피에트로 마스카니(Pietro Mascagni, 1863-1945)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서 간주곡 Intermezzo
글쓴이:박수원
장화처럼 생긴 이탈리아 반도의 엄지 발가락 끝 부분에 삼각형 모양을 한 섬이 자리 잡고 있다. 시칠리아! 제주도 열 네 배 정도의 크기로 따뜻한 기후와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지니고 있으며, 오랜 세월 동안 침략과 정복의 역사를 거치면서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곳이다. 제주도를 ‘물’, ‘바람’, ‘여자’가 많은 삼다도(三多島)라 일컫는 것처럼, 시칠리아 섬을 설명할 때에는 ‘화산’, 풍요로움을 나타내는 ‘밀 이삭’, 그리고 ‘메두사의 머리’, 이렇게 세 가지를 자랑스럽게 꼽는다. 그런데, 다른 것은 접어두고라도, 머리카락이 뱀으로 된 신화 속의 무시무시한 괴물 메두사가 왜 하필 이 가운데 들어있는 것일까?
시칠리아 섬의 문장:
세개의 다리(화산), 밀이삭, 메두사의 머리로 이루어졌다.
원래 메두사는 예쁜 여자였는데, 고운 머리 결을 스스로 뽐내며 잘난 체했던 탓에 그 얼굴을 바라보기만 해도 돌로 변해버리는,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게 되는, 지독한 벌을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이와 동경하는 이 모두를 파멸로 이끄는 무서운 저주, 그 뒤에는 우리 삶이 지닌 ‘치명적인 매력’과 ‘유혹’, 심지어는 ‘사랑의 질투’와 ‘집착’을 넘어선 ‘고귀함’마저 숨어있다고 하니, 결국 메두사의 머리는 인생 섭리를 드러내는 상징물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유명 패션 브랜드 베르사체가 메두사의 머리를 로고로 삼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1889년, 이탈리아 출신의 작곡가 마스카니는 시칠리아 섬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살인사건을 소재로 짧은 오페라 한편을 세상에 내놓았다. 가난한 농촌 마을, 향기로운 오렌지 꽃이 바람에 날리는 좋은 시절, 그것도 가장 거룩해야 할 부활절에, 서로 잘 알고 지내던 두 남자가 술에 취해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이게 된다. 이유인 즉슨, 투리뚜라는 이름을 가진 어떤 남자가 옛 여인 로라를 잊지 못하여 그 주변을 맴돌았는데, 문제는 로라가 이미 결혼한 여자였다는 것! 그리고 투리뚜의 약혼녀 산투차는 어떻게 해서든 그 마음을 돌려 보려고 애썼지만, 끝끝내 무정하게 돌아서는 모습에 그만 질투심이 폭발하여, 로라의 남편에게 해서는 안될 고자질을 하게 된 것!
부활절 낮 미사를 마치고 난 후, 성당 앞 광장에서 마을 사람들과 포도주를 거나하게 나누어 마시던 중, 이 두 남자는 서로 얼굴에 술을 끼얹고 귀를 물어 뜯으며 싸우러 나가게 된다. 이른바 시칠리아식 죽음의 결투를 앞두고 불쌍한 투리뚜는 두려움 반, 후회 반의 심정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어머니 앞에 비틀거리며 달려와 평범한 척, 애써 마음을 추스리며 마지막 말을 건넨다.
“이 포도주는 독해서……, 별로 마시지도 않았는데 벌써 취하네요. 바람 좀 쐬고 올 테니, 먼저 저를 좀 안아주세요. 만일 돌아오지 못한다 하더라도, 산투차에게는 좋은 어머니가 되어주셔야 해요…….”
이 오페라의 제목<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굳이 번역하자면 “촌뜨기 대장부”, 아니면 요즈음 말로 “찌질이 대장부”라고 할 수 있으려나? 헌데, 이 ‘대장부’와 ‘촌뜨기'라는 말은 서로 반대 되는 정서를 담고 있어서 붙여 쓰면 괜히 어색한 느낌이 든다. 죽을 것이 뻔한 싸움판에 알량한 자존심을 앞세우고 기어들어가는 투리뚜는 결코 ‘대장부’의 그릇이 아닌데, “촌뜨기 대장부”라는 제목을 통해 그의 어리석음을 비웃으려는 작가의 의도가 조금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들 역시 주변의 모든 것들이 뿜어내는 ‘치명적인 매력’에 이끌려 울고, 웃으면서 살아갈 뿐이지 않은가! 이번 부활에는 조금 더 큰 위로를 받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투리뚜가 건넨 마지막 말을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되뇌어 본다. “주님, 저를 좀 안아주세요”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서 간주곡 Intermezzo
글쓴이:박수원
장화처럼 생긴 이탈리아 반도의 엄지 발가락 끝 부분에 삼각형 모양을 한 섬이 자리 잡고 있다. 시칠리아! 제주도 열 네 배 정도의 크기로 따뜻한 기후와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지니고 있으며, 오랜 세월 동안 침략과 정복의 역사를 거치면서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곳이다. 제주도를 ‘물’, ‘바람’, ‘여자’가 많은 삼다도(三多島)라 일컫는 것처럼, 시칠리아 섬을 설명할 때에는 ‘화산’, 풍요로움을 나타내는 ‘밀 이삭’, 그리고 ‘메두사의 머리’, 이렇게 세 가지를 자랑스럽게 꼽는다. 그런데, 다른 것은 접어두고라도, 머리카락이 뱀으로 된 신화 속의 무시무시한 괴물 메두사가 왜 하필 이 가운데 들어있는 것일까?
시칠리아 섬의 문장:
세개의 다리(화산), 밀이삭, 메두사의 머리로 이루어졌다.
원래 메두사는 예쁜 여자였는데, 고운 머리 결을 스스로 뽐내며 잘난 체했던 탓에 그 얼굴을 바라보기만 해도 돌로 변해버리는,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게 되는, 지독한 벌을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이와 동경하는 이 모두를 파멸로 이끄는 무서운 저주, 그 뒤에는 우리 삶이 지닌 ‘치명적인 매력’과 ‘유혹’, 심지어는 ‘사랑의 질투’와 ‘집착’을 넘어선 ‘고귀함’마저 숨어있다고 하니, 결국 메두사의 머리는 인생 섭리를 드러내는 상징물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유명 패션 브랜드 베르사체가 메두사의 머리를 로고로 삼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1889년, 이탈리아 출신의 작곡가 마스카니는 시칠리아 섬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살인사건을 소재로 짧은 오페라 한편을 세상에 내놓았다. 가난한 농촌 마을, 향기로운 오렌지 꽃이 바람에 날리는 좋은 시절, 그것도 가장 거룩해야 할 부활절에, 서로 잘 알고 지내던 두 남자가 술에 취해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이게 된다. 이유인 즉슨, 투리뚜라는 이름을 가진 어떤 남자가 옛 여인 로라를 잊지 못하여 그 주변을 맴돌았는데, 문제는 로라가 이미 결혼한 여자였다는 것! 그리고 투리뚜의 약혼녀 산투차는 어떻게 해서든 그 마음을 돌려 보려고 애썼지만, 끝끝내 무정하게 돌아서는 모습에 그만 질투심이 폭발하여, 로라의 남편에게 해서는 안될 고자질을 하게 된 것!
부활절 낮 미사를 마치고 난 후, 성당 앞 광장에서 마을 사람들과 포도주를 거나하게 나누어 마시던 중, 이 두 남자는 서로 얼굴에 술을 끼얹고 귀를 물어 뜯으며 싸우러 나가게 된다. 이른바 시칠리아식 죽음의 결투를 앞두고 불쌍한 투리뚜는 두려움 반, 후회 반의 심정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어머니 앞에 비틀거리며 달려와 평범한 척, 애써 마음을 추스리며 마지막 말을 건넨다.
“이 포도주는 독해서……, 별로 마시지도 않았는데 벌써 취하네요. 바람 좀 쐬고 올 테니, 먼저 저를 좀 안아주세요. 만일 돌아오지 못한다 하더라도, 산투차에게는 좋은 어머니가 되어주셔야 해요…….”
이 오페라의 제목<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굳이 번역하자면 “촌뜨기 대장부”, 아니면 요즈음 말로 “찌질이 대장부”라고 할 수 있으려나? 헌데, 이 ‘대장부’와 ‘촌뜨기'라는 말은 서로 반대 되는 정서를 담고 있어서 붙여 쓰면 괜히 어색한 느낌이 든다. 죽을 것이 뻔한 싸움판에 알량한 자존심을 앞세우고 기어들어가는 투리뚜는 결코 ‘대장부’의 그릇이 아닌데, “촌뜨기 대장부”라는 제목을 통해 그의 어리석음을 비웃으려는 작가의 의도가 조금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들 역시 주변의 모든 것들이 뿜어내는 ‘치명적인 매력’에 이끌려 울고, 웃으면서 살아갈 뿐이지 않은가! 이번 부활에는 조금 더 큰 위로를 받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투리뚜가 건넨 마지막 말을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되뇌어 본다. “주님, 저를 좀 안아주세요”